본문 바로가기
심리학

서번트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천재?

by 정지마 2022. 9. 15.
반응형

서번트 증후군 신드롬 자폐 스펙트럼 천재
서번트 증후군은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다.

의미

서번트 증후군이란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뜻합니다.

영국의 의학박사 다운이 처음 사용한 용어

정신과 병동에서 30년간 일한 다운 박사는 1887년, 런던의학협회에 서번트 증후군에 해당하는 10명의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다운 박사는 이들을 '이디엇 서번트(idiot savant)'혹은 '백지 천재'라 칭했는데, 이는 낮은 IQ를 가진 석학 혹은 천재를 뜻합니다. 환자들은 수학, 음악, 미술, 기계 등의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였고,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영화 <레인 맨>

레인맨의 주인공인 레이먼드는 실제 인물인 킴 픽(Kim Peek)을 모델로 했습니다. 픽은 FG 증후군이라는 희귀한 유전병을 앓고 있었고 소뇌의 발달 이상과 함께, 선천적으로 좌우뇌를 이어주는 뇌교가 생기지 않은 심각한 뇌 기형 환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불과 생후 20개월 무렵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한번 읽은 것은 죄다 기억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쇼 프로그램에서 그를 초청했고 다수의 학자들이 그를 연구했는데, 그는 죽기 전까지 무려 12,000권에 해당하는 책의 내용을 언제 어느 때나 힘들이지 않고 기억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책뿐 아니라 한번 들은 곡조 역시 평생 잊지 않았으며, 장애가 있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피아노를 멋들어지게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IQ는 87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많은 사례들을 칭하는 '백지 천재 증후군' 혹은 '서번트 증후군'

또 다른 유명인으로 자폐증의 한 종류인 아스퍼거 병 환자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대니얼 타멧(Daniel Tammet)을 들 수 있습니다. 타멧은 베스트셀러 작가일 뿐 아니라 세계 기억 선수권 대회 우승자이며, 5시간 9분에 걸쳐 원주율을 22,514자리까지 암기한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어를 제외한 9개 언어를 자유롭게 말하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일주일 만에 아이슬란드어를 습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백지 천재 증후군'혹은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칭합니다. 백지 천재 증후군을 보이는 사례의 절반 이상은 타멧과 같은 자폐증 환자이며, 나머지 절반은 픽과 같은 뇌 손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자폐아나 뇌손상 환자 중 이런 능력을 보이는 사례는 극소수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분야의 전문가인 대럴드 트레퍼트(Darold Treffert)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뇌 손상이 천재성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뇌 손상을 통해 정상인이 진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능력을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천재인 게 아니라 우리가 바보인 것입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론이 제시되었으나,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개중 가장 유력한 설명은 좌뇌와 우뇌의 기능 차이에 근거한 설명입니다.

'좌뇌의 손상과 우뇌의 보상 이론'에서 기인하는 서번트 증후군

태아의 좌뇌는 우뇌보다 늦게 성장합니다. 좌뇌 성장 중 태아가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되면 좌뇌의 손상으로 인해 우뇌의 기능이 탁월해짐으로써 서번트 증후군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출생 후 강한 충격 혹은 치매로 좌뇌가 손상된 사람들 역시 이 증상을 가지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좌뇌는 분석적 능력 및 추상적 개념을 도출하는 능력이 탁월한 반면, 우뇌는 좀 더 종합적이고 예술적인 시각, 분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적 통찰을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가 감각 자극을 받아들일 때 우뇌는 자극 자체의 세부사항에 주의를 좀 더 기울이는 반면, 좌뇌는 세부사항을 하나의 개념으로 뭉뚱그리는데 능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만약 좌뇌가 방해하지만 않으면, 우뇌는 날 것 그대로의 감각 자극을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그대로 기억 속에 저장시킬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이론은 좌뇌와 우뇌가 분리되어버린 픽의 뇌가 가공할 만한 기억력을 보이는 현상이나 좌뇌의 발달에 문제가 있는 자폐증 환자들이 놀라운 기억력과 함께 예술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잘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이 이론을 내세운 학자들은 인간의 진화 과정이 좀 더 고위 인지 기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 백지 천재가 보이는 능력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상 성인의 좌뇌는 우뇌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선 좌뇌의 분석적, 추상적 사고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예술가들이 생활 능력이 부족해 경제적으로 많은 곤궁에 처했다는 것은, 상대적을 좌뇌의 기능이 우뇌에 비해 열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추상적 사고란 개개 사실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이를 개념으로 바꾸어놓는 과정일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타멧은 1부터 10,000까지의 숫자에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 질감의 도형을 결부시켜 기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9는 높은 탑, 25는 기운찬 모습, 289는 못생긴 얼굴이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숫자를 이렇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양 손가락을 이용해서 1부터 10까지를 셀 수 있게 되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10 다음에는 11이 있고 그다음에는 12가 있음을 알게 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숫자의 끝은 어디까지일까?"라는 질문과 함께 무한의 신비에 매료됩니다. 각 숫자의 색깔과 모양을 잊어버리는 대신 '일반 법칙'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백지 천재들의 일반 지능이 오히려 정상인보다 매우 낮게 나오는 것은 이렇듯 '기억을 상실하는' 능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때는 천재가 되는 꿈을 꾸어봅니다. 하루 8시간씩 책과 씨름하지 않아도, 외워지지 않는 영어 단어를 수없이 써가며 외우지 않아도, 마치 공기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지식이 머릿속에 쌓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백지 천재 증후군의 존재는 학습에 대한 우리의 단순한 선입관을 무너뜨립니다. 수억 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어렵게 획득한 것은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개념을 추상화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내는 능력입니다. 12,000권의 책 내용을 그대로 암기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로부터 얻은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설령 책 내용을 모두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골똘히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 새로운 통찰과 가슴속 깊이 흘렸던 눈물은 여러분 속에 깊이 남아 삶의 진로를 바꾸고 새로운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반응형

댓글